'에디터의 시선'

영화를 말하다

어나더 어스, 나를 찾아 떠나는 모험

영화 '어나더 어스'의 로다가 들려주는

사랑과 혐오의 그 중간에 서있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예술은 우리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하는 동시에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시야를 선물한다.”

 


 

스스로를 사랑하라. 참 멋진 말이기도 하지만 이게 쉬우면 우리 삶에 힘든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 같아.

자기 애정과 자기혐오는 한 끗 차이라서 조금만 안 좋은 상황에 잠식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제 나를 사랑했던 나 자신이 오늘은 가장 혐오스러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영화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 2011)’에서 주인공 로다가 창창한 행복 티켓을 거머쥔 MIT 합격생에서 파티가 끝나고 음주운전으로 일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가 된 시점은 단 5초나 될까. 천국과 지옥은 얄궂게도 그 거리가 참 가깝다는 게 실감이 된 장면이었지. 그 이후로 로다는 법의 죗값을 받았지만, 자기혐오와 증오로 스스로에 대한 어떤 애정도, 삶의 애착도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어.

 

MIT 합격을 앞둔 유망한 소녀에서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된 로다. 그녀는 자기혐오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
하늘에 떠있는 제2의 지구를 바라보며 동사(凍死) 하는 자살을 선택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죽지도 못한다.

 

하지만 신기해. 그런 자기혐오 단계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은 새로운 자아 아니면 도피 그것도 아니면 죽음을 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거든.

로다가 사고를 낸 그날, 머리 위 우주에는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나타나게 되고 4년 후 그 행성에 가고자 하는 지원자를 뽑는 데 로다는 스스럼없이 지원하게 되지. 그녀가 현 지구에서의 삶에 미련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이미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이 증오스러운 현실을 티끌 하나 없는 저 새카만 우주에 던지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4년 전의 사고로 잃어버린 로다의 자아가 저 새카만 우주의 어느 별, 거울에 비친 듯 똑같이 투영되는 제2의 지구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해서였을까.

로다가 제2의 지구로의 여행에 지원을 하면서 적은 이야기가 참 마음에 먹먹하게 남아.

 


 

“초기 탐험가들이 대서양을 건너 서쪽으로 나아갔을 때 사람들 대부분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죠.
배를 타고 서쪽으로 계속 가면, 허공으로 떨어질 거라고 믿었어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닻을 올린 배에 상류층이나 귀족, 예술가, 상인은 없었습니다. 모두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죠.”

 

 


현 지구에서의 삶과 이별하고 제2의 지구로 떠나고자 하는 로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그중 예술가는 없었다고 언급했지만, 난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어.

예술가. 오롯이 창작으로의 길만 갈 수 있게 설계된 재능을 가진 사람들.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밟혀진 잡초에도 눈과 귀를 기울여 마음 아파하는 순수한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 때가 있어.

21세기 성공의 잣대나 경제적 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들의 노력과 기다림의 시간을 사람들은 외면하기도 하거든. 나는 예술가야말로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다른 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가장 먼저 경험하고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닻을 올릴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로다의 자기혐오와는 다르지만, 난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세상의 기준과 판단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비난과 고통 속으로 몰아 넣지 않았으면 해.
물론 고통은 내면의 성장을 돕기도 하고 자기 비난과 슬럼프는 예술적 능력을 성숙시키기도 하지만, 상처의 골이 깊어 영영 빛나는 재능을 저 우주 위에 띄울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우주의 푸른 행성과 닮은 로다의 눈. 그녀의 눈 깊은 곳에는 늘 분노와 애정, 그리움과 기대를 품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닻을 올린

당신의 모험에 가장 필요한 것.

로다가 제2지구로의 여행에 발탁되었음에도 스스로 가지 않게 된 이유도 결국 현재 살고 있는 지구에서의 자아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떠나는 모험은 텅 비어버린 배와 같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해.

 


 

“최초로 우주에 간, 러시아 우주비행사의 이야기에요.
그가 우주에 도착해 우주선 내부의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은 지구의 유려한 윤곽이었죠.
인류 최초로 자신이 사는 행성을 직접 본 거예요. 완전히 넋을 잃고 바라봤을 수밖에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이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래요. ‘딱. 딱. 딱.’
계기판 안 제어판을 뜯어내고 연장을 꺼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서 멈추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는 근원지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소리가 고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상태로 며칠이 지나고 우주비행사는 이 작은 소리가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미치게 할 수 있다는걸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 지구 위 우주에 자신은 좁은 우주선 안, 오로지 혼자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25일간은 이 소리를 견뎌야 했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미치지 않으려면 이 소리를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에요.
우주비행사는 눈을 감고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얼마 후 눈을 떴는데 더 이상 딱딱 소리가 들리지 않았대요. 대신 음악이 들렸어요.

결국 우주비행사는 남은 기간 동안 행복하고 평화롭게 여행을 끝냈다고 해요.”

 

 


 

이 대사는 로다가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기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그래서 치유된 자아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로다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 자신을 다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순간, 제2의 지구로의 모험이 아닌 그녀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지금 지구에서의 모험을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닐까.

우주 비행사의 남은 25일간의 여행이 행복했듯, 스스로에 대한 혐오를 다시 사랑으로 바꾼 그녀의 남은 삶은 충분히 행복하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그리고 그것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라 믿어.

 

 

제2 지구로의 여행이 아닌 현재의 지구 삶을 선택한 로다. 혐오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자아를 치유한 그녀는 새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는 더 이상 유망한 MIT 입학을
앞둔 소녀도 아니고,
교통사고의 가해자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지만,
삶에 대한 모험은 아직 멈추지 않았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로다만이 바라볼 수 있는
가치는 분명 존재할 테니까.

나의 곁에 살아가는 예술가들,

창작이 주는 행복을 사랑하는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하고

위대한 당신들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실수하고 끊임없이 후회하며 스스로를 혐오하기도 하면서. 개개인의 재능과 꿈이 닻을 달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 까지 수 많은 좌절과 비난과 실패를 경험할 테지만, 그 끝에는 부나 성공이란 단어만으로 감히 설명할 수 없는 행복과 사랑이 꼭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언제나 그대들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부디 행복한 여행을 누릴 수 있기를.

 


 

“살아가는 동안 우린 경탄을 거듭해 왔죠.

생물학자들이 점점 더 작은 것을 관찰하게 될 때.

천문학자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멀리 더 멀리 관찰해 시간은 물론 이젠 공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때.

하지만 가장 신비로운 건 작은 것도 큰 것도 아닌 가까이에 있는 우리입니다.

몸과 영혼을 분리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우린 무엇을 보길 원할까요?”

 

 


EDITOR.RED

instagram  |  @hyojinlim7


사진   영화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 2011)
글 / 아트웍 / 구성   리즈매거진 콘텐츠 팀. EDITO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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