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문래동 청색종이

'청색종이'​, 파란 대문을 여는

시인의 책방 上

방적기계인 물레가 많다 해서 문래동

그곳에는 예술인의 글을 지키는

한 시인의 책방이 있습니다.

사람의 희로애락이 단어 몇 개의 메시지로 쉽게 오고 가는 세상입니다.

건조한 촉감과 옛 연필심 냄새가 나는 종이 책은 너무 무겁고, 곁에 두기엔 불편한 짐이 되었습니다.

손이 베일 것 같은 빳빳한 종이 결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촉감입니다. 그 위에 빼곡히 적힌 시인의 글귀는 은유와 고뇌에서 비롯된 사랑 고백이기에, 요즘의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편지 같습니다.

홍대나 신사동, 또는 망원동이나 연남동 어느 루프탑 카페에서 마시는 달달한 아이스 라테 같은 글귀들이 유행처럼 너도 나도 노래 가사에, 서점의 인기 책자 표지에 글이 아닌 ‘이미지’처럼 쉽게 보입니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에도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오래된 노장 바리스타처럼, 여전히 우리를 무덥고 뜨거운 마음으로 머물게 하는 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엮고 보관하고 소개하는 데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판사&책방 '청색종이'를 운영하는 김태형 시인의 시.

우리는 문자를 너무 쉽게 표현하고,
너무 쉽게 버립니다.

진한 에스프레소와 같은
무거우면서도 쌉싸름한,

마음을 묵직하게 쓸어내려주는 글귀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2가 14-15

문래동의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작은 책방, '청색종이'

 

김태형 시인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 청색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한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철공소가 집결해있는 문래동에는 임대료 상승을 피해 떠밀려온 예술인들과 값싼 임대료로 자신의 작업실을 열고 싶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고, 자신의 출판사를 차리고 싶었던 김태형 시인 또한 문래로 찾아든 예술인 중 한 명으로, 무릇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김태형 시인 또한 잊히거나 눈길이 닿지 않는 순수문학에 마음을 두며 지키고 전하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에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문래동 예술인 거리의 벽화들. 낡은 콘크리트 벽에 그려진 동화 같은 그림은 문래동의 낡은 시대와 아픔을 위로해 주는 듯한 쓸쓸한 감정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태형 시인과 청색종이가 있는 문래동으로 재촉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거란 괜한 짐작도 하게 됩니다.

문래동 예술인 거리라고 하지만 낡은 시대를 대변하는 녹슨 셔터문이 빼곡한 철공소들.

저렴한 임대료와 월세로 들어온 예술인들의 배고픈 열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그 흔한 브루어리 수제 맥줏집과 카페들. 돈을 목적으로 들어온 부동산 기획자와 가짜 예술가들의 눈치싸움이 곱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된 낡은 골목골목은 추억과 옛 것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예술과 노동자들의 땀과 가난을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보기 좋게만’ 방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닫힌 철공소 셔터문에 그려진 낙서와 찢긴 포스터. 그리고 한산한 오후에는 적막마저 느껴지는 문래동의 골목들. 예술가들의 열정이 값싼 임대료를 이용해 몰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또다시 둥지 몰림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저 밀리고 밀려 문래동에 정착했지만 예술마을이라는 타이틀로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가게들에, 예술가들은 또 어디로 가나.

이 또한 방관자의 시각으로 걱정하는 한낱 비겁한 감성에 지나지 않나 생각이 들 찰나에 파아란 작은 대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출판사와 책방을 겸하고 있는 ‘청색종이’.

회색 도시 정거장에 하나뿐인 꽃집과 같은 장소.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우르슬라’라는 소녀 화가의 다락방 아틀리에를 마주한 느낌이랄까요.

누군가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갈 작은 책방이지만, 소소한 발견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장인 김태형 시인의 감성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졌을 소소한 인테리어와 나무 넝쿨, 장미, 화분들. 시인의 책방답게 구석구석 새겨진 문구들이 꼭 책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책 한 권의 일부분 같은 느낌을 줍니다.

 

빽빽한 철공소와 낡은 골목에서 마주한 파란 대문의 청색종이.

청색종이라는 공간 자체가
한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듯,

하얀 벽면을 흰 종이 삼아
김태형 시인의 글귀들이
하나하나 적혀있습니다.

순수문학을 지키고 알리는 일,

좋아하니까 하는 일입니다.


 

“예술에 종사하고 그것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게 출세나 자본의 이익과는 다소 멀지라도,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많죠. 저 또한 좋아하지 않으면 책방을 유지해 나가는 게 여간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청색종이의 주인장인 김태형 시인.

“문래동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가와 공방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닌, sns에서 인기 있는 술집과 카페를 방문하려고 오는 것이죠. 상업시설이 사람들을 모아 예술인 마을을 활성화시킬 것 같지만, 오히려 철공소 장인들과 문래 예술가들은 더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 스스로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청색종이라는 출판사 또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문래동에 정착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 화가와 문학 작가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대중에게 보이고 양지화 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고 실행해 나가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문래동 화가들과 문학가들의 작품과 글을 한데 엮어 책으로 출간하는 일입니다.

이곳은 화가와 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와 작품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청색종이 또한 여러 가지 예술 콘텐츠를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유일한 출판사이기도 하고요.

시각예술작가 아홉 명의 그림 에세이인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은 화가들의 인사이트와 그림 그리는 자들의 인문학적 성찰을 대중이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는 표현으로 만든 그림 에세이 책입니다.”

청색종이가 기획한 도서들과 여러 문인들의 시집,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예술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순수문학뿐 아니라, 문래동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글과 함께 엮어 만든 청색종이만의 서적들.

청색종이는 단순히 출판사나 책방의 역할을 넘어,
문래동 예술 콘텐츠를 대중화시키는 데 앞장섭니다.

 


 

이 땅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

그 많은 학문과 직업 중에 왜 하필이면 미술가란 직업을 가지고 마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처럼 낑낑대며 힘들어하는가. 이 문제는 아무도 궁금해한 적 없는 사안이지만 가끔 혼자서 이 상황을 꺼내 들고 명상도 하고 또한 고민도 한다. 그렇다고 뭐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 아마 미술가로 살고 있는 이상 평생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 명제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다는 게 그 결론이다.
[중략]
마치 너는 왜 공기를 마시냐고 묻는 질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것에 정답이 없듯이 당연히 작가의 직업도 그렇다.

– 양해영 –

 

진부한 사랑

어딘가 고장 난 것인지 모르는 예술이 두렵다. 기술 같은 것이면 얼마나 좋으랴. 백 번 중의 좋은 한 번의 마음 떨림에 예술을 버릴 수 없다.

– 이록현 –

 

이어지는 길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을 파헤쳐내는 데 그치는 방식으로 함께할 사람들에게 무겁고 불편한 과제를 안겨주는 대신 그것을 ‘감싸 안음’이라는 필터로 걸러냄으로써 나의 작품을 보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작은 온기와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것이 내가 작가로서 바라는 것임과 동시에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중략]
작가에게 붙을 수 있는 영예로운 칭호에 대한 동경,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작가로서의 삶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 현병연 –

 

청색종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 中

‘그곳에 가면’ 다음 편은
[ 청색종이, 파란 대문을 여는 시인의 책방 下 ]에서 이어집니다.


출판사&책방 ‘청색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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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글 / 구성   리즈매거진 콘텐츠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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